
-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김민희).
그녀에게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 소녀 숙희(김태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것.
드디어 백작이 등장하고,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CGV 의 시놉시스 소개인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 박찬욱 감독의 영화하면 '공동경비 구역JSA' 와 '올드보이' 가 사람들에게 익숙하겠죠.
하지만, 저 둘 중에 박찬욱 감독 특유의 피비린내와 반전이 심한 영화를 고르라면 전
'올드보이' 를 고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복수극인가 했는데 결말은 주인공 배우인
최민식의 '왈왈왈' 연기가 보여준 반전이 아주 인상깊었죠. 그리고 그 반전은 이번 아가씨도
여전합니다. 감독은 영화의 구성을 1부 2부 3부 로 짜맞췄는데, 1부까지는 솔직히 지루합니다.
평범한 소프트 레즈물 같아서 이게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맞나 싶지요. 그건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인지 1부에서 보다 지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집니다. 하지만 1부 막바지에
하녀 역의 배우가 찰진 명대사를 날리고, 아가씨의 진짜 모습과 서로 속이는 백작과 아가씨
그리고 자기가 가장 교활한 줄 알았지만 가장 바보였던 하녀. 이 세 인물들의 알맹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갑니다.
- SNS 에서 이 영화는 레즈물이라 하던데, 다 보고 난 뒤 제 감상은 일단 레즈물은 맞아요.
하지만 '이 영화 안 보면 아몰랑 여혐이야' 하고 뒤집을 정도로 정석적인 레즈물은 아니고
남성이 성행위의 시점에서 본 레즈물 ? 같아요. 물론 성행위 정도야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성행위가 꼭 필요했나 싶은 장면은 하나 정도였는데
배우들은 그 이상으로 섹스를 해댔거든요. 마치 남성관객들한테 '야 니들만 발정하냐
우리 여자들도 이렇게 발정한다' 고 광고하듯이 섹스합니다. 그래서 남자들한테
여자들이 심심하면 섹스하는 생물이란 의식을 주입시키는 느낌입니다.
- 이야기로의 완성도는 원작인 핑거 스미스를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해볼 수 없지만
1부와 2부까지의 완성도는 상당했어요. 1부에서 설명하지 않은 장면을 2부에서
똑같이 찍으면서 추가하고, 1부의 중심인물을 하녀로 설정했다면, 2부에는
아가씨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서로가 모르는 속사정을 전달하고 있죠.
하지만 정리해야 할 3부의 완성도는 글쎄요 ? 전형적인 '더 잘 속이는 녀석이 승리한다'
패턴같아서 대놓고 누가 이길지 보여주기에 '응 ? 왜 저렇게 이겼지 궁금하다' 가 아닌
'역시나' 가 나오게 합니다. 올드보이의 마지막 반전과 달리 식상했어요.
- 스토리를 빼고 본다면 작중 배경들의 디테일은 상당합니다. 마치 다이쇼 시대의
풍속소설에서 나오는 한 장면을 그대로 옮긴듯한 섬세한 배경에 화혼양재의 시대를
살다 나온 남자 배우들의 서양식 양장과 일본식 주택의 기묘한 조화. 초반에만 잠깐
등장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사회배경까지. 이런 디테일만으로도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
갈만한 가치가 있다 싶더군요.
- 혹시나 2부까지만 보고 질려서 나가실 분은 3부 꼭 보세요. 남자 주연 배우인
하정우가 살짝 지루해진 3부를 살렸습니다. 정말 마지막에 그런 대사를 뱉을 줄이야
각본가 지시인지 아니면 배우 애드립인지 모르겠지만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빵 터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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