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완역본 도서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돌배게 출판사 출간.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압록강을 건너 
만주. 산해관. 북경에 걸쳐 중국지역을 경험하고, 그 기록과 여행 도중에 느낀 자신의 생각을 적어
완성한 책입니다. 당대에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필사본이 돌았을만큼 인기있는 저작이기에
초고본이 정확히 무엇인가 알기 어려운데, 2012년에 초고본을 기반으로 한 저작이 나와서
그 초고본 저작을 기반으로 작년에 개정판을 냈군요.

고등학교 (흠흠!) 시절 국어 교과서 (!!) 에 실렸던 일야구도하기 를 보고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던 열하일기입니다. 당시에는 번역본이라 해도 완역본은 많이 없었고
주로 박지원이 지었다 고 퍼져있는 호질이나 허생전만 실려있는 내용이 많아.
역사 좀 파던 학생 아니면 박지원 = 국문 소설가 로 생각하던 암담한 시절이었죠.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된 내용은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가는 상~중.
겨우 북경에 도착했는데 정작 축하받을 건륭제가 피서갔다고 피서지역까지 가는 중.
축하행사를 마치고 북경에 도착한 다음, 북경에서 다시 돌아갈 준비와 박지원의 경험담을 기록한 하.
이렇게 구성되어있습니다만, 격식을 차려서 쓴 책이 아니고 박지원 개인의 여행기이기에
주로 서술된 내용이 저렇다 뿐이지, 중간중간에 박지원 개인이 보고 감탄하거나 비판하거나
중국 선비들과 필담한 내용, 중국에 퍼진 당시 조선에 대한 잘못된 인식 혹은 서책.
다양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서술이 난잡하면, 읽기 어려워서 중간에 접는데
박지원의 필력이 대단한 탓인지 보면서 흥미가 떨어지지 않네요.

흔히들 박지원을 북학파의 거두로 알기에, 열하일기에도 거창한 사상적 서술이 있나 싶어
뒤져보기도 합니다. 교과서에도 박지원이 청의 문물에 감탄한 내용을 가지고
이런 내용이 북학파에 영향을 미쳤다 는 식으로 풀어내기도 하는데, 완역본을 읽어보면
문물에 감탄하는 내용은 상중하 3권이라는 분량에 비하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만, 필담을 통해 만나는 선비들 중에 조선 유학의 폐쇄성과 당시 청나라로 들어오던
서양의 지동설, 진화론, 명나라 때 건너와 중국에 뼈를 묻었던 마테오 리치에 대한 대담 등
박지원이 조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보이지만 그걸 근거로
무조건 조선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 조선은 청을 본받아 바뀌어야 한다, 그런 서술은 없네요.
사실, 정식 사절단도 아니고 사절단에 낀 일반인인 박지원의 입장에서도 그런 서술은 힘들겠죠.
순수하게 당시 청나라의 실상을 보고 놀랄 일에는 놀라고 대단하다 싶은 일은 감탄한 정도입니다.

필담은 주로 중국 선비들, 특히 당시까지 청이 지배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선비들이나
먹고 살려고 장사를 하는 선비들과 나누는 내용이 보이네요. 물론 '문자의 옥' 이 사회 분위기였던
당시 청나라 분위기에 저런 필담이 걸리면 바로 처형 아니면 옥사 할테니 쓰는 사람도
보는 박지원도 바로 지우거나 태우는 행동을 합니다.

박지원의 필력이나 입담이 괜찮아서 보는 내내 즐거웠지만, 개인적으로 최고 꼽는 에피소드는
건륭제 생일 축하 행사에서 티벳 달라이라마가 왔을 때, 조선사신단들의 반응입니다.
당시 숭유억불로 400년이상 보낸 조선 입장에서 불료 그것도 중국 불교도 아닌,
자기들 기준에서 듣보잡인 티벳에서 중이 왔는데, 건륭제는 조선사신단에게
그 중에게 예를 갖춰라 하죠. 황제가 하라니 하기는 했고, 달라이라마도 답례로
금불상을 보냈는데, 이게 또 난감. 불상을 그대로 들고가자니 조선에 반입하면
사절단 소속 관리들은 숭유억불인 조선에 왠 이단사상이 깃들인 물건을 가져왔냐 할테고
버리자니 건륭제에게 찍힐께 뻔하고, 결국 사신단은 불상을 사절단에 같이 온 하인에게 넘기고
하인도 전전긍긍하다 결국 버렸다 고 하면서 '저 불상 통째로 금이면 녹여서 쓰겠는데 도금이겠지ㅎㅎ'
이럽니다. 당시 조선사회 기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싶지만, 아무리 티벳이 중국 기준으로
촌구석 나라래도, 한 나라 대표가 보답으로 보낸 물품이 도금일리가 있을까요.
어떤 의미론 당시 조선의 폐쇄성이 보여 씁쓸하지만,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트로 9만원을 주고 산 책이었지만, 충분히 그 값을 하는 열하일기 였습니다.

덧글

  • 진냥 2018/05/10 00:19 # 답글

    [열하일기] 정말 재미있지요!!! 보리출판사 버전으로 읽었는데, 완역이라니 또 읽고 싶어집니다!
  • 괴인 怪人 2018/05/13 21:06 #

    보리출판사 번역본도 재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기원 교수가 번역한 열하일기가 보고싶네요
  • 아스떼 2018/05/10 16:28 # 답글

    가끔 고전을 읽다보면 현대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어서 답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니 한결 책을 읽기가 쉬워지더라구요.

    저도 이 버전의 열하일기를 읽어보고 싶어서 주문해놓은 상태인데,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 괴인 怪人 2018/05/13 21:07 #

    어떤 시대든 현재를 살아가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선택이 모여서 역사를 만들죠.
    하지만 그 선택을 미래에서 본다면 답답할 수도 있고 감탄할 수도 있다는게 사는 재미같습니다
  • 解明 2018/05/10 17:28 # 답글

    우리는 고전 하면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데, 『열하일기』에는 마치 시트콤을 보는 듯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요. '기상새설(欺霜賽雪)'을 막연하게 좋은 뜻인 줄 착각하고, 전당포 주인에게 그 문구를 글씨로 써서 선물하였다가 영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오자 이상하게 여겼다는 일화를 읽다가 웃은 기억이 나는군요.
  • 괴인 怪人 2018/05/13 21:09 #

    전당포 주인에게는 좋은 의미로 써준 글을 나중에 진짜 의미를 알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ㅎㅎ

    몽고왕족과 마주친 에피소드도 꽤 재밌었습니다.
  • 함부르거 2018/05/11 17:11 # 답글

    지금 읽는 책 다음에 읽을 책으로 정했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
  • 괴인 怪人 2018/05/13 21:09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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