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에 관하여 계발

세종과 훈민정음. 직업이든 취미든 역사에 발을 둔 사람이 안 볼 수 없는 소재로 망했습니다.

없어진 기록을 그 시절 사람들 기록에서 유추해 재구성한다 는 핑계로
허위, 날조를 하지 맙시다.
심지어 없는 기록도 아니고 멀쩡히 남아있는 사실들을
자기들 멋대로 상상하고 그 텅텅 비어버린 두개골 안에서 멋대로 결론내리고
과거사실들을 끼워맞추는 개탄스런 짓거리를 하라고 역사기록이 있는게 아닙니다.

짧게나마 시간을 내서 '한글 창제' ' 불교' 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불교계, 적어도 조계종 측에선 최소한 2010년부터 이 웃기지도 않은 신미한글창제설 밑작업을 해왔습니다.




2015년 12월 개최했다는 조계종 연찬회 공지입니다.



보시다시피 속세의 모든 번뇌를 끊고 입산수도해 정진한다는 성직자들이
대놓고 '근거가 없지만, 아무튼 중이 대단한 일했음' 이라 주장하는 사람 데려다 
강연회 열어주고 강연료 주고 있습니다.

명예와 부에 관심없이 진리만 추구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어디로 던져버렸을까요.


덧글

  • 기롯 2019/07/26 20:16 # 답글

    땡중색이들이 돈좀 지원해주니...뭔 ㅄ같은게 나오네요...
  • 괴인 怪人 2019/07/27 14:42 #

    이렇게 종교에 회의감이 늘어갑니다
  • 무명병사 2019/07/26 21:45 # 답글

    이것으로 우리나라의 기독교 - 불교 갈등은 예수쟁이들의 일방적인 이단질이 아니라 예수쟁이들과 땡중들의 병림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괴인 怪人 2019/07/27 14:42 #

    가진게 있으니 썩어가기 시작합니다.
  • 2019/07/27 16: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한일군사정보협정파기 2019/07/27 04:22 # 답글

    종교미신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죠.
  • 괴인 怪人 2019/07/27 14:40 #

    어떻게 이게 미신과 관계있는 글로 보입니까
  • 도연초 2019/07/27 10:58 # 답글

    조계종이 원래 한국불교종단 중에서 가장 정치적이라지만 저렇게까지...

    염불보다 젯밥이라더니 옛말 그르지 않은듯
  • 괴인 怪人 2019/07/27 14:48 #

    대중에 떨어져 입산수도한다는 사람들이 참..
  • 소심한 빙하 2019/07/27 14:02 # 답글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깊숙히 관여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어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여,

    인도 북부 구자라트 지방에 가면 한글과 아주 유사한 글자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글이 창제된 후 인도로 건너간 것일가요? 아니면 승려들의 일방적 주장대로 인도에서 사용되는 글자가 조선으로 와서 그것이 훈민정음 창제에 자료로 이용되었을까요?
  • 괴인 怪人 2019/07/27 14:40 #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슐(戌)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ㆍ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슐(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ㆍ·ㅡ·ㅗ·ㅜ·ㅛ·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ㅓ·ㅏ·ㅑ·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

    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128)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129) 에 합하여 삼극(三極)130) 의 뜻과 이기(二氣)131)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상세히 해석을 가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한 사람의 사적인 업적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하였다.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809029_004
  • 소심한 빙하 2019/07/27 21:54 # 답글

    저 질문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저가 물은 것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이전에 일부 유식한 양반들이 중국말을 배워 한자로 말하기 이전에 평민이나 하층민들이 사용하는 우리 말이 있었습니다. 이 말이 전국적으로 통일되지 않고 지방마다 다르고 하니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어 발음을 정리하여 우리말을 훈민정음 28자로 표현한 것이 언문인데,

    훈민정음 28자와 모양은 아주 유사하지만 발음은 물론 다른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언어는 한글이 창제된 후 인도로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언어가 승려들 주장대로 한국으로 넘어와서 한글 창제의 쟈료로 되었는지 궁금하여 질문한 것입니다.

    혹설에는 한글 모양은 집의 방문의 문살을 보고 창제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68132
941
2150954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91